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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칼럼-함께 키우는 아이들

진눈깨비 내리던 그날의 슬픔 그리고 분노
2015-06-06 조회 8,326 댓글 1

2013년 12월 11일은 아마 그해 들어 처음으로 가장 추운 날이 아니었던가 싶다.

행사가 열리는 구영공원에 도착하니 하늘소풍 카페 내의 구영리 엄마들이 주축이 된 49재 준비팀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전국의 회원들이 보내 준 물품을 제대에 진열하고 있었다. 준비위원장인 최인식 군의원은 이리저리 뛰며 전체적인 지휘를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정신없이 이리저리 진행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작은 소란이 일었다.


 준비팀 중 한 회원이 지금은 탈퇴했지만 당시 울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어떤 회원의 강압적인 지시와 서현이 친모의 행동에 대해 항의를 했던 것이다. 이미 서현이 친부에게 면죄부를 준 일로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느꼈다) 마음이 상해있던 차라 정말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당장 49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더 급선무였기에 가서 제상 차리는 것은 엄마가 해야 하지 않느냐고 좋게 말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나는  많아야 200-300명 정도 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최인식 의원의 노력 덕분에 거의 일천여명 가까운 추모객들이 모였고 각 방송국에서도 이십여명 가까운 취재 기자들과 카메라가 몰려들었다.

 

 서현의 49재는 서현이라는 아이만을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다. 비록 서현이의 49재였지만 서현이로 대표되는 아동학대, 그 학대로 죽어간 모든 아이들을 위한 행사였다.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 중에서 서현이 만큼  온국민이 분노하고 힘을 합해 진정, 서명을하고 대규모의 49재를 치뤄준 아이도 없다. 이후 열린 공판과  시위, 집회 등도 서현이 사건만큼  끝까지 함께 해준 사건도 없었다. 우리는 서현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일을 알리고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게 하기 위해 일년을 미친듯이 쉬지않고 달렸다. 세상의 많은 서현이들을 위해서...


 서울경기 지역은 김성희 회원이 주도하여 같은 시간에 서울시청에서 49재를 열었다. 권구영 실장의 노력으로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49재에는 새누리당 이혜훈 위원, 이자스민 의원, 당시 민주당의 남인순 의원이 참석하였고 많은 회원들이 함께 했다.






 

 낮에 내리던 비가 진눈깨비로 변해 발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추었던 그날, 울산의 49재는 아나운서 출신의 김진영님의 사회로 최인식 준비위원장인사말, 강옥찬님의 추모사 낭독, 나의 호소문 낭독, 헌화, 오수령님 외 악사 3인의 살풀이, 최승길님이 지휘하는 smi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연주 ,김병철, 이선호님의 추모 노래로 진행되었고 참석자 전원이 노란 풍선을 날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서울과 울산에서 동시에 낭독된 호소문에서 국회의원들에게는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조속한 통과를 호소하였고, 법무부에는 아동보호기관의 수사권 및 강제 집행 등 권한 강화와 만 12세 미만 아동이 지속적 학대로 숨졌을 경우 살인죄로 적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보호자의 방임에 대해 책임을 물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교육부에는 아동학대예방 교육을 철저히 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행사 진행 내내 전광판에는 서현이의 귀여운 사진들을 바탕으로 임형주가 부르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흘러나와 추모자들을 오열하게 하였다. 나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계속 울었지만, 서현의 친모 역시 몸부림 치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보자 화가 나서 ‘다시는 보지 않겠다’ 다짐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아이를 잃고 사리분별이 안되어 그랬을거야, 지금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나는, 내 잣대로 사람을 보았다. 내가 가진 모성이 내 눈을 가리웠다.

 

 49재 행사는 각 언론에 소개되었고 하늘소풍의 회원들은 카페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49재 소식을 읽으며 한마음으로 울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스스로 다졌다. 이후로 울산계모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은 더욱 불이 붙었고 특례법 통과를 외치는 전화도 더욱 빗발쳤다.


그리고 49재가 끝나고 일주일 뒤 울산계모의 첫 공판이 열렸고 이때부터 경찰들과의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였고  쌍욕을 퍼부어댔다. 경찰들이 무슨 죄라고,,,,,  그때, 우리는 모두 분노의 화신들이었고 무대뽀로 돌진하는 무소들 같았었다.







* 당시 호소문은 첨부파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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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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