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최 일선의 장소는 학교(유치원 포함), 병원 이다.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에게는 빈번한 상처와 계절에 맞지 않게 입고 오는 옷, 위축된 행동, 부모나 집에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등의 징후가 있다고 한다. 서현이의 학대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서현이가 6살 때 다니던 포항의 유치원 교사였다.
포항의 유치원 교사는 어린 서현이의 멍을 허투로 보지 않고 면밀히 관찰했다. 검도장에서 맞아서 머리가 터졌다거나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는 등 울산계모의 변명을 믿지 않고 서현이를 한동안 유심히 지켜보고 달래며 어린 서현이로부터 ‘엄마가 때렸다’는 말을 받아내어 친부에게 연락하였고 ‘ 훈육이다, 간섭하지말라’는 친부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서현이를 관찰하다가 자주 멍이 들어오자 포항에 있는 아동보호기관에 학대 신고를 했던 것이다. .
아동보호전문기관 (이하 아보전)에서 개입을 했으나 친부의 거부로 지속적인 면담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친부가 인천으로 이사를 한 후 단절이 되었으나 어쨌든 이때의 신고기록이 있어서 상해치사로 입건됐던 계모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이유로 학대치사로 기소변경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후 하늘소풍을 비롯한 전 국민의 아우성으로 울산지검은 살인 등으로 다시 기소변경을 하였다) 이처럼 아동을 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학대신고의무자가 된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직군)
서현이는 H초교를 2년간 다녔다.
2년동안 울산계모가 걷어차서 허벅지 뼈가 부러지고 계모가 끼얹은 뜨거운 물로 팔 다리에 화상을 입어 피부이식 수술까지 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으며 학부모들의 증언에 의하면 급식을 허겁지겁 먹는다거나 한여름에도 긴 팔 옷을 입고 온다거나 가끔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다거나 하는 증상을 많이 보였음에도 담임이 단 한 번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몰랐다해도’ 신고의무자로서의 의무를 행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서현의 친부가 학대 사실을 ‘몰랐다’ 고 주장하였으나 방임으로 처벌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서현이 49재 전날 H초교에 가서 교장과 교감을 만났다.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아 수요일마다 학교 담벼락 밑에서 제를 지냈음을 지적하자 교장은 학교 안으로 들어오게 하면 규모가 점점 커질까봐 그랬다고 답했다. 소풍가는 날, 맞아죽은 그 가엾은 아이를 추모하는 행사가 커지는 게 왜 두려운지 난 모르겠다. 교실은 아니더라도 집에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학교를 의지삼았던 아이를 생각한다면 운동장 한구석에서라도 제를 지낼 수 있게 해주고 참석자들에게 따뜻한 물 한잔이라도 건네주는 것이 옳은 자세가 아니었을까.
동네마다 걸린 서현이 49재 알림 현수막도 ‘아이들이 충격받을까봐 ’ 학교 근처에는 달지 못하게 했던 학교다. 서현이 사건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작은 동네에서 어른들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얘기들, 뉴스에 나온 얘기를 어떻게 모르겠는가. 혹시라도 자신들 학교가 오르내릴까봐 쉬쉬하는 학교의 태도가 어떻게 교육자로서의 모습이란 말인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학교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아동학대에 대해 드러내고 학대를 당할 경우 학교 담임에게 상담하라고 말할 수 는 없었는지 , 난 참으로 안타까웠다.
교장과 교감은 계속 ‘우리도 가슴아프다. 기도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담임에 대해서도 변명으로 일관하기에 ‘모르는 것도 학생에 대한 무관심이므로 교사 자격이 없다’라고 쏘아붙였다. 이후 우리는 학교 담임과 병원 의사를 상대로 신고의무자 처벌을 울산시청에 요구하고 집회를 열기도 했었다.
서현이 49재날, 울산시청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49재 행사가 열리기로 한 구영공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서현이 친부의 전화를 받았다. 내 전화번호는 친모가 알려주었다고 한다. 뜬금없이 서현이 신경써줘서 고맙다, 내가 죄인이다 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당신이 죄인인건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화한 이유가 뭐냐, 내가 당신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 알고 있지 않느냐, 내가 편한 상대가 아닐텐데 왜 전화했느냐고 하자 또 무한반복으로 ‘몰랐다’는 말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호소문에 성명서, 기자회견까지 하느라 밥도 먹지 못하고 파김치가 되어있는 판국에 짜증이 솟구쳤다. 그전까지는 내 욕을 하고 다니더니 이제와서 왜 고마워졌느냐고 물었는데, 알고보니 친모가 내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왜? 또 친모는 내가 계모 박씨의 제부에게 전화해서 변호사 사임 시킨 것을 친부에게 전달하며 ‘검사님께 가서 변호사 사임했다고 말씀드려라’ 고 했다는 것이다. 왜?
그때 우리는 친부를 아동학대 방임이나 공범으로 고발하기 위해 전국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고발인 명단을 모았을 때였다. 자기 절친과 바람을 피우고 아이를 뺏어가서 결국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손 놓고 있던,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는 전남편에게 왜 친모는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거지? 그리고 친부는 이미 아동학대 방임으로 불구속 기소가 된 상태였는데, 왜 가장 분노의 정점에 서있는 모임의 대표인 나를 구슬리게 하고 그를 엄단할 검사에게 ‘변호사 사임했다’는 말까지 전달하라고 했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날 화가 얼마나 치솟던지 친모에게 ‘서현이 49재 끝나면 손 놓고 더 이상 널 보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날 내게 굽신거리며 구슬리던 서현의 친부는 얼마 후 본성을 드러냈다. 며칠 후 뜬금없이 내게 이런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저자세를 보이면서까지 구슬렸는데 내가 넘어가지않자 화가났던것일까?

자신의 딸의 원한을 풀고자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고 있는 내게 자신을 공격한다고 저런 문자를 보내고 ‘조용해진 다음 (공혜정을) 보겠다’라는 협박을 주변 사람에게 했다고 한다. 얼마전 우연히 만난 서현 친부의 인척도 내게 ‘밤길 조심하셔야겠다’고 에둘러 협박한 적도 있다.


그는 유부녀였던 계모 박씨와 불륜을 저질러 그 가정을 파탄낸 사람이다. 둘의 불륜을 꿈에도 모르고 속아서 이혼했던 계모 박씨의 전남편이 친부에게 공판 끝나고 한번 보자고 하는 문자에 또 다음과 같은 답을 남겼다.

남의 가정을 파탄내 놓고 어찌 저리 뻔뻔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다. 이해 안되는 사람이 어찌 친부뿐이랴, 아이가 비참하게 학대로 죽어갈 때는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다시 한번 서현이의 명복을 빈다.
친부와의 통화 이후 저녁 7시에 열리는 서현이 49재가 열리는 구영공원으로 향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가운데 구영리 엄마들이 전국에서 보내온 서현이 옷과 장난감, 과자 등을 젯상에 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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