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통과를 위해 전국 서명운동 및 서울 지역 집회 등 정신없이 몰아치는 가운데 서현이 49재에 대한 의견들이 나왔다. 아무도 지켜주지 못한 아이, 소풍가고 싶다고 애원하다 폭행당해 죽은 아이에 대한 사연이 너무나 기구하여 그 아이가 한을 풀고 좋은 곳에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이야기였다. 49재가 불교의식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종교와 관련지어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서현이를 위한 우리의 마음이었다.
49재는 서현이를 위한 행사이긴 했지만 서현이 하나를 위한 행사는 아니었다. 아동학대 사건의 상징인 서현이를 통해 아동학대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더 큰 목적을 두었다.

49재 행사는 구영리 주민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행하였다.
후원물품이나 진행 상황에 대해 공지하는 외에 나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관여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자발적 모임이라는 의미에 맞게 각자 알아서 행동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 우리 끼리 소소하게 시작된 행사가 울주군의회 최인식 의원이 추진위원장을 맡아 주도하면서 한국수력원자력의 후원을 받아 제대로 된 행사를 꾸렸고 울산지역 국회의원인 강길부 의원이 초헌관을, 신장열 울주군수가 아헌관을 이순걸 울주군의회 의장과 김석기 적십자사 울산지사장이 종헌관으로 참석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49재가 열리는 12월 11일이 수요일인 관계로 참석하지 못하는 서울 경기 지역 회원들이 서울에서 따로 49재를 열자고 하여 같은 시각에 서울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서울 지역은 김성희 회원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새누리 당에서 가족행복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혜훈 최고위원의 비서인 권구영 실장의 도움이 컸다. 권구영 실장은 서울 49재 행사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의 보좌관들에게 ‘삥뜯기’에 돌입했다. 사실 말이 삥 뜯기지 다들 흔쾌히 도와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벤트 업체를 운영하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장비와 물품, 인력을 도움 받아 서울에서의 행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게 하였다.

서울과 울산에서 동시 진행된 49재 행사를 위해 전국의 회원들에게서 수많은 후원물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생수 , 김밥, 떡, 커피, 서현이 한복, 옷, 장난감, 인형, 핫팩, 물티슈 등등 어마어마한 종류의 물품이 서현이를 위해 써달라고 보내졌던 것이다. 그러나 회원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현금은 받지 않았다. 난 처음부터 그 어떤 잡음도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수시로 현금 후원은 받지 않는다고 수차례 공지를 해야 했다. 후원물품은 구영리 주민인 밀크소다님이 관리했고 카페에 후원물품을 공개하는 것 외에 나는 이 것 역시 따로 관여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하도록 하십시오”
가만히 지켜보던 조관장님이 49재를 며칠 앞둔 날 전화를 주셨다.
기자회견? 기자회견이라니!!!
“성명서도 발표하십시오”
성명서? 성명서라니!!!
성명서가 대체 뭐예요...ㅠㅠ
그러나 역시 행동파인 관장님은 어느새 울산지역 여성단체에 연락을 다 넣어주셨고 난 연예인들의 울고불고 하던 기자회견 외에 딱히 본 것이 없어서 대체 이것을 어찌해야 하나 암담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것 뿐만이 아니었다. 49재 준비 팀에서 그날 나보고 호소문을 발표하라고 하더니 추모사까지 쓰라는 게 아닌가? 나는 정말 살면서, 단 한 번도 성명서, 호소문, 추모사라는 것을 본 적 조차 없었다. 당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늘 허기가 지던 나였지만 그 세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하면 어째야 하는지 몰라서 입맛까지 뚝 떨어질 지경이었다.
기자회견은 울산 지역 여성단체에서 주관을 하여 울산시청 프레스 룸에서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를 베테랑 시민운동권자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운동이라고는 수영을 조금 해본 것 외에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라 하는 사람이고 시민단체와는 후원금 조금 내는 것 외에 일체 엮여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질 않았다. 뭐든 내가 척척 해내는 줄 알고 있기에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현수막은 저희가 준비할테니 공대표님은 성명서를 써오세요” 라고 하는 여성단체 회장에게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성명서는 어떻게 쓰는거예요?”
놀랍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그분이 초안을 잡아서 메일로 보내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전 처음 성명서라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기초로 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라는 절절한 목소리가 담긴 성명서를 써내려갔다.

서현이 49재를 위해 하루 전 날 울산으로 간 나는 당시 서현이 사건을 취재 중이던 2580 취재팀과 함께 서현이가 다니던 H초교의 교장과 교감을 만나러 갔다. 나는 당시까지만해도 아동학대에 있어서 학교 담임이 신고의무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는 아동학대 사건을 접한 지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었고 난 분노 했을 뿐, 아동학대 사건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 간의 경험과 더불어 조금 공부를 했기에 약간 알게 되었다)
2580 김현경 기자를 서현이 이모라고 위장시켜 함께 H초교에 간 나는 목이 쉴 정도로 학교의 비교육적 처사를 성토하였으나 이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손주연
저부터 반성하고 따듯한 시선과 말부터 시작할래요
어려운 일 해내시는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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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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