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이하 특례법)의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회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더 좋아진다고 하니까 , 그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최소한의 제도라고 생각하니까 무조건 믿고 전화폭격을 가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례법의 명칭이 너무 길어서 대부분 '아동학대특례법'이라 줄여서 불렀는데, 당시엔 비분강개로인해 몰랐지만 돌아보면 웃기는 이름이었다. '아동학대특례법'이라니! 아이들을 학대하자고 특별히 법을 만든단 말인가?

[땅바닥에 엎드려 피켓을 만드는 하늘소풍 평택 회원]
당시 수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울산계모 변호사의 난, 울산계모 자매들의 신상털이, 울산계모사건 친부 이씨의 신상털이, 조선족 계모 사건과 칠곡 계모 사건, 신비사건의 유족들 가입, 친부 이씨에 대한 고발장 접수, 전국 1366 소장님들과의 끊임없는 전화 연락과 논의, 서현이 49재에 대한 논의 등 그야말로 눈코 감을 새가 없을 정도였다. 밥조차 편히 먹을 수 없었고 하루 건너 한번씩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다. 날마다 살이 눈에 띄게 빠졌다.
[아동전문보호기관과의 협력]
국회를 다녀온 후, 중앙아동보호기관의 홍창표 팀장과 처음 연락이 되었다.
당시 서현이가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 (이하 아보전)에 신고가 되었으나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돌려보낸 2년 후 사망한 것과 칠곡 계모 사건의 동생 소리 (가명)가 세 번이나 구미 아보전에 학대신고를 당했으나 돌려보내 사망한 것 때문에 아보전에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던 때였고 나 역시 아보전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었다.
첫 전화 연결부터 공격적으로 따따부따 따지고 항의를 하였는데, 홍팀장은 특유의 느린 목소리로 연신 '당연히 화 내실만 합니다' 라며 사과를 했다. 저쪽도 같이 붙어줘야 싸울 맛이 나는데 , 이건 도무지 싸움이 되지 않았다. '다 털어버리겠어요!' 라고 하면 '네 그러셔야죠, 저희가 다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는데 무슨 말싸움이 되겠는가 말이다.
두시간 넘게 통화를 하며 아보전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이브더 칠드런, 초록 우산, 굿 네이버스 등이 아보전 일을 맡고 있다는 것도, 아보전이 국가업무를 수행하기는 하지만 정식 국가 기관이 아니기에 활동에 제약이 많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서현이와 소리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보전은 수사기관이 아니고 강제적 권한을 행사하는 곳이 아니기에 친권을 가진 자들이 아동을 데려가도 안타깝지만 손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동을 폭행한다는 신고를 받고 찾아갔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고 집안에서 아이를 계속 때리는 소리가 나서 급한 김에 창문을 깨고 들어가 아동을 구출해서 나오면 '납치'와 '기물파손'으로 고소를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했다. 친권자들의 행패로 인해 대낮에도 문을 잠그고 업무를 봐야한다니, 따따부따 따진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당시 서현이 친모가 서현이를 찾을 수 없어서 5년간 한 번도 못 봤다고 한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물었다. (오프더 레코드 사항도 있음. 그러나 당시는 그 말조차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었다)
'왜 친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니 자신들은 개인정보를 알 도리가 없고, 경찰에게 문의해도 개인정보라고 알려주지 않아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홍팀장은 아보전의 권한 강화가 아동 보호의 한 방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울주 아동 사망사건 진상조사 위원회를 만났을 때 강하게 어필하였고, 당시 위원장이었던 남인순 의원이 아보전이 학대행위자에 대한 신분조회나 친생부모의 신분조회등을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에 요청 할 수 있도록 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2015년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자주 홍팀장과 특례법 통과 일 및 아동보호에 관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싸우기도 많이 하였지만 나름 우정을 쌓아갔고 전국의 아보전과 하늘소풍의 밀월관계가 시작되었다.

[ 2014년 3월 7일, 하늘소풍 회원들과 중앙아동보호 전문기관 간담회]
아보전이 특례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 보도자료를 보내주어 회원들이 특례법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는가 하면 하늘소풍이 국회 사진전을 열 때 사진과 물품 지원을 해주었고, 우리 회원들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열어 아동학대에 관한 구체적 사항들과 대책을 브리핑해주었고, 하늘소풍의 지역 회원들이 서명운동을 할 때 각 지역 아보전에서 서명테이블, 홍보용품, 서명지 등의 물품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특례법이 시행되었으나 예산이 부족하여 아보전이 고전할 때, 우리 하늘소풍이 전국 릴레이 서명운동과 국회 소복시위를 벌여 측면 지원을 하기도 했고 '아동학대 착한신고 캠페인' 때는 하늘소풍이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정 어린 관계는 내가 하늘소풍 대표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이어졌다.

[울산계모 변호사의 난과 울산계모 자매의 신상털이]
처음 하늘소풍에 가입을 한 사람들은 공통적인 현상을 보이곤 한다.
끔찍한 화상 사진과 부러진 허벅지 뼈의 엑스레이, 원인 불상의 타박상이 가득한 그동안의 진료내역, 서현이가 쓴 일기장과 그림, 환하게 웃는 귀여운 모습 등을 보며 몇날 며칠을 울다가 분노하며 일어서는 단계가 그것이다.
당시 우리는 우리의 분노가 그리 거센 줄을 몰랐다. 돌아보니 이성을 잃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신상털이'였다.
회원들은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울산계모 사건의 진행사항을 보고 변호사 이름을 알아내어 각종 추리 끝에 변호사의 신상을 털어서 카페에 게시를 했다.
그러나 우리가 싸울 대상은 자기 일에 충실한 변호사가 아니었기에 회원들에게 공격을 하지 말고 호소를 해서 스스로 사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몇 천만 원의 수임료와 성공보수를 약속받은 변호사가 울산계모를 너무 열심히 변호하면 살인죄 적용 및 엄벌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회원들은 그 변호사의 사무실 홈피에 글을 올리고 울면서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변호하지 말아달라는 전화를 하였는데, 이 무렵 또 다른 신상털이가 있었다. 울산계모의 자매들 이름과 직장이 털렸던 것이다.
당시 서현이의 죽음에서 면피를 하고자 했던 친부가 울산계모 자매들의 신상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속으로는 비겁한 놈이라 생각했지만 당장 변호사 사임이 급했기에 00지역의 00과목 선생님인 박 ** 이라고 올리면서 ‘ 피붙이는 죄가 없지만 살인자를 변호하는 자들은 공범으로 간주한다’ 라고 하였는데, 회원들이 지역과 과목, 이름 한자 만 가지고 신상을 털어버렸던 것이다.
정말 CSI에 버금가는 네티즌 수사대들이었다.
그러나 자매의 신상털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붙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자매의 신상이 털리자 그 자매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 아동학대 살인자를 변호하고 감싸는 자가 어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느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그날로 자매는 휴직을 하고 말았다.
이틀 후 자매의 남편인 울산계모의 제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내게 하소연을 하며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묻기에 변호사를 사임시키고 앞으로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말 것을 조건으로 걸자 자매 측은 바로 그 날 울산계모의 변호사를 사임시켰다.
그들이 약속을 지키자 나 역시 자매 측에 관한 모든 글을 지우고 회원들의 항의전화를 그만두게 하였다. 이후 항소 선고까지 국선 변호사가 울산계모의 변호를 맡게 되었는데 어쩌면 이 것 역시 울산계모의 엄중처벌을 이끌어 내게 된 하나의 작은 조각이 되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4.7 아동복지예산 확충을 위한 전국 릴레이 서명 중 강원도 ]
[서현이 친부의 신상털이]
난 하늘소풍 일을 하면서 세상이 인터넷으로 인해 얼마나 작아졌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서현이 친부에 대해서는 그 어떤 단서도 게시하지 않고 사건에 대해서만 적었을 뿐인데도 내게 수많은 제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찰에 제보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던가보다)
특히 친부와 같은 회사 사람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그 분들 중 몇 분과 통화를 하여 사건 당시 행동과 근황을 알게 되었다.
‘ 딸이 소풍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해서 동료 중 몇은 황급히 친부와 동행하고 나머지 동료들은 다음날 장례식장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소풍가서 빠져죽은 게 아니라 집안의 욕조에서 빠져죽었다고 해서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친부가 계모를 위로하고 둘이 자주 소곤거리는 걸 봤다는 것이다.

서현이 사망당시 계모의 폭행으로 부러진 치아, 내가 직접 찍었다

MBN에서 방송된 서현이 사건,
[계모는 서현이의 허벅지를 발로 차서 부러뜨렸으나 아이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친부는 이에 대해 서현이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났다]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애를 어떻게 봤기에 이리 됐느냐' 며 엄마 탓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아빠들의 모습인데, 아이의 죽음의 이유가 석연치 않았음에도 의구심을 갖거나 슬퍼하기 보다는 계모를 위로하는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 그들의 증언이었다.
서현이의 부검이 끝나고 입관식을 할 때 계모가 관을 안고 쓰러져 울며 ‘채우야 (서현이 개명 이름) 먼저 가있어, 엄마가 곧 따라갈게’ 라며 오열을 하더라며, 나중에 계모가 범인으로 밝혀진 후 그 가증스러운 모습에 치가 떨렸다면서 동료는 통화 내내 많이 울었다.
(경찰은 장례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함구하고 있다가 장례식 후 긴급체포를 했기에 장례식이 끝날 때 까지 사람들은 울산계모가 범인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나중에 친부 담당 검사님께 보내드렸다)
나는 이 모든 내용을 카페에 게시하였고, 회원들은 날마다 새로운 소식에 치를 떨며 SNS 등으로 퍼날랐고 사람들은 분노하여 카페를 찾아들어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카페에는 기자들을 비롯하여 경찰, 검찰 관계자들도 많이 들어와있었기에 계모의 기소와 엄벌 구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계속 게시글을 올렸다.
내가 ‘중요한 패는 끝까지 내놓는 게 아니다’라며 친부의 신상 알리기를 거부했음에도 친부가 인천에서 아파트 분양 일을 하고 있는데 잘먹고 회식도 참석하고 있다더라' 란 한줄의 글에서 힌트를 얻은 회원들이 다시 네티즌 수사대를 동원하여 현재 친부가 분양하는 아파트와 몸담고 있는 대행사, 그리고 본사까지 싸그리 털어버렸다.
국내 유수의 건설 업체인 본사에는 사람들의 항의가 쏟아졌고 마침내 친부는 잘리고 말았다. (그러나 수완이 좋은 친부는 이후에도 인맥을 동원하여 구속 직전까지 다른 곳에서 그 일을 계속했다)
세상은 이렇게 좁다.
얼마 전 우연찮게 친부의 제수씨를 만나게 되었다.
두 시간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대화(?)를 나누다가 친모의 과거가 어떻게 H교에 퍼지게 되고 그것이 물밑으로 우리 회원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서현이 사망까지도 학부모 및 주민들은 계모가 ‘친모’인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서현이가 ‘욕조에 빠져죽었다’는 얘기에 ‘아이잃은 엄마’를 걱정하며 붙들고 울면서 혹시라도 계모가 몹쓸 생각을 할까봐 지키고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이후 진실을 알게 된 학부모 중에는 충격으로 입원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친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친모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계모는 학부모들에게 친모의 과거를 얘기하며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온갖 말을 다 했고, 그 놀라운 소식이 빠르게 전달 되었을 것은 불보듯 자명한 일이다.
사건 초기 친모에 대한 학부모와 학교의 반응이 왜 그리 싸늘했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고 서현이 49재때 주민들과의 작은 사건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 덕분에 또 하나의 가슴아픈 이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울산계모의 전남편과 두 자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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