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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기업

'꿈꿀 권리’를 찾아 준 따뜻한 기술 - 예비사회적기업 ‘그립플레이’
2019-03-22 조회 577 댓글 0

꿈꿀 권리’를 찾아 준 따뜻한 기술

필기 보조기구로 장애인의 경험을 확장시켜주는 ‘그립플레이’



미술을 무척 좋아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점 하나, 한 줄 긋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세 살 무렵부터 앓아온 근육병이 점점 심해져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기 때문이죠.


 

청소년이 되면서 하고 싶은 것은 많아졌지만 몸이 안 따라주니 포기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그 빈자리에 ‘안 돼.’ ‘난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채워졌습니다.


 

2년 전 소년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습니다. 이번에 포기하지 않고 꽉 붙들었습니다. 7년여 만에 다시 붓을 들었고 다른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조촐한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그는 대중을 향해 이제 자신의 꿈을 당당히 말합니다. 나의 꿈은 화가라고요.



행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요한군 그림 (사진제공: 문윤희)



화폭에선 그가 못하는 일이라곤 없었습니다. 행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고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운동장을 누볐습니다. 


​"희망, 용기, 자신감 회복이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문윤희씨가 제게 들려준 아들 요한군의 이야기입니다. 요한이는 어떻게 화가의 꿈을 꾸게 됐을까요?



내 손에 꼭 맞는 필기 보조기구 탄생


그립플레이는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맞춤형 필기 보조기구를 제작해 보급하는 예비사회적기업입니다. 요한이같은 근육병 환자나 척수장애, 뇌 병변 질환으로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보조기구입니다.



그립플레이가 제작한 보조기구에 펜을 꽂아 미술 교육을 받고 있는 소년 (사진제공: 그립플레이)


손에 끼워 사용하는 이 보조기구에 연필이나 붓을 장착하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식사보조기구나 타이핑 보조기구로도 변형이 가능합니다. 재질은 친환경 소재인 옥수수 전분을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필기 보조기구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생산이 안돼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요. 한 개에 10만 원에서 45만 원을 호가하지만 체형이 달라 불편하고 파손됐을 때 A/S 받기도 힘들어 큰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전국 어디서나 3D 프린터만 있으면 OK


그립플레이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의 손에 딱 맞는 맞춤형 필기 보조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가가호호 방문해 스캐너로 손 모양과 치수를 측정해야 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측정이 가능합니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디자이너는 측정값을 분석해 설계에 들어갑니다.



디자인 설계를 마친 3D 모델링파일을 gcode로 변환해 출력작업이 한창인 3D 프린터


완성된 설계도 정보를 3D 프린터에 입력하면 얼마 후 제품이 완성됩니다. 상담부터 제품의 출력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주 내외입니다. 그립플레이는 이 같은 일련의 공정을 담은 플랫폼을 개발해 3D 프린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립플레이는 올해 처음으로 전라남도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원격시스템으로 필기 보조기구 2개를 만들었어요. 지난달에는 인도네시아의 한 쇼핑몰 업체가 기업의 사회공헌 일환으로 보조기구 제작을 의뢰하고 싶다는 제안을 보내왔어요. 이런 혁신성과 품질을 인정받아 그립플레이는 설립 2년 만인 지난해 매출 1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2016년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상용보조공학기기 선정 품목으로 등록됐습니다. 이에 따라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장애인들은 무상으로 제품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종로구 세운상가 H:창의허브 SE:CLOUD 기술혁신랩에 입주한 그립플레이



사람을 향한 기술…소외계층에게 다양한 경험 제공


그립플레이는 기술의 힘으로 장애인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사회적 미션입니다.




이준상 그립플레이 대표


“이전의 기술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소득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것들이 한정돼 사회문제가 됐죠. 저희는 기술이 돈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쓰이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소외계층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기술의 이로움이 모두에게 골고루 퍼져 갈 수 있도록 말이죠.” (이준상 그립플레이 대표)


그립플레이는 단순히 필기 보조기구를 제작해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수학교와 재활병원을 돌며 ‘찾아가는 스튜디오’라는 미술 수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미술교육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꿈, 희망, 도전의 동기를 부여하고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와 소통을 유도해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찾아가는 스튜디오' 미술교육 현장 (사진제공: 그립플레이)


​필기 보조기구 제작과 그림 수업은 기업의 후원이나 펀딩을 통해 저소득층 장애 아동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됩니다. 지난해와 올해 250여 개의 보조기구가 만들어졌고 그와 비슷한 숫자만큼 장애 아동들이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단지 교육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2차례 그림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그림형제의 동화 '브레맨음악대'를 주제로 보조기구를 활용해 장애아동이 그린 그림 전시회 (사진제공: 그립플레이)



전시회를 통해 그립플레이의 사회적 가치에 공감해 입사지원서를 낸 최윤정 그립플레이 디자이너는 필기 보조기구를 만드는 매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제가 만든 제품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는 분들을 만날 때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얼마 전 필기를 할 수 없어 시험을 포기했던 40대 남성분이 제가 설계한 보조기구를 끼고 시험에 도전해 1차에 합격했어요. 누군가 접어뒀던 꿈의 나래를 다시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매력이 아닐까요.”



그립플레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  최윤정 디자이너(왼쪽에서 두번째)를 포함해 4명이다.


혁신기술 정보 공유... 대자본 중심 탈피 지역사회 스스로 문제 해결


이준상 대표는 앞으로 보조기구 제작방법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계획입니다. 장애인들이 개발 소스를 다운 받아서 자신이 필요한 제품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외국에서는 의족과 의수를 만드는 기술을 이미 공개했습니다.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처럼 정보 공유를 통해 기술이 대기업, 대자본 중심의 혁신이 아닌 지역과 시민사회 안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3D 프린터로 출력한 다양한 물건들​


그는 3D 프린팅 기술뿐 아니라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미술품을 관람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습니다. 조각을 전공한 이준상 대표는 학창시절 교내에 붙었던 포스터 한 장이 그립플레이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장애인과 함께 떠나는 해외탐방 여행이었어요. 지체장애인 1분과 청각장애인 2분과 팀을 꾸렸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첫 단추부터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무심코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입구에 턱이 있어 휠체어를 탄 친구가 들어올수 없었어요. 청각장애인들과 이야기를 할 땐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말해야 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세상이지요.”​


그때 함께 여행 한 것을 인연으로 이 대표는 졸업 후 한국 장애인 국제예술단에서 장애인 예술가들의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맞춤형 필기구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3D 프린터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고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2015년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디자인 싱킹 과정을 수료했어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만큼 다양한 색깔과 무늬를 가미한 디자인으로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사진제공: 그립플레이)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만큼 꿈을 꾼다고 봅니다. 만일 경험의 크기가 꿈의 크기를 결정한다면 장애가 있어도 돈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위한 따뜻한 기술이 그 장벽을 뛰어넘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립플레이 홈페이지:​ ​griplay.org



글.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이우기 (사진가​)



출처: 사회적경제 세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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