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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가이드

협동조합 오래된미래 ① : 로치데일,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이 등장하기까지
2018-07-23 조회 892 댓글 0

​협동조합, 참 쉽다고들 하죠? 


하지만, 실제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면,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느껴지는데요. 용어들도 낯설고, 내용은 뭐가 또 이리 복잡한지, 쉬운 구석이라곤 하나 없다 싶습니다. 좀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한 '협동조합의 역사'마저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싶은데요. 이런 분들을 위해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뉴스레터에 실린 글 몇 편 소개하려 합니다. '협동조합 오래된 미래' 칼럼인데요. 협동조합의 오랜 역사를 어렵지 않게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탄을 하며 읽은 글이었는데요. 협동조합의 역사를 한눈에 들어오게 제대로 요약 정리한 글입니다. 굵직굵직한 협동조합의 흐름에 맞춰 세 편으로 나눠 소개한 것마저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글입니다. 협동조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길 원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협동조합 오래된 미래 1편은 바로 아래 그대로 넣어두었습니다. 2편과 3편은 관련 정보에 큐레이션 해두었는데요. 물론, 1편 앞쪽 목차의 2편 3편 부분에도 클릭하면 바로 보실 수 있도록 링크해두었습니다. 관련 정보에는 함께 읽으면 좋을 기사 몇 편 함께 넣어두었으니 참고하시면 된답니다.


by 기획 큐레이터 이현정



① 로치데일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이 등장하기까지
② 로치데일 이후협동조합의 변신과 진화
 변화의 물결과 21기 협동조합 운동


협동조합 오래된미래 ① : 로치데일,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이 등장하기까지


뢰벨(Friedrich Wilhelm August Frobel)1837년 독일 튀링겐에 설립한 킨더가르텐은 세계 최초 유치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의 공장에 개설된 유치원은 프뢰벨의 그것보다 20여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협동조합의 아버지, 오언의 실험

오언의 뉴라나크 방적공장에는 유치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와 노동자를 위한 야간학교도 개설되어 있었다. 이 공장은 관행처럼 여겨지던 17시간 노동을 10시간 반으로 줄이고 10세 이하 어린이들의 노동을 제한하였고, 노동자들의 협동을 바탕으로 한 자주적 생산관리 제도를 도입하고 있었다. 또한 공장 노동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든 점포도 개설되어 있었다.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이윤과 직결된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강화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오언의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실제 성과로도 이어져 방적공장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 공장을 견학하려는 지식인, 기업가들이 한 해 2만 명에 이를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협동조합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로버트 오언 
(1771.5.14 ~ 1858.11.17)

하지만 뉴라나크 공장의 성공도 오언의 원대한 꿈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그는 구성원들의 자주운영, 자주관리에 기반한 자급자족의 협동조합 공동체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꿈의 실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 주 해안의 8천여 헥타르의 농지를 사들이고, 그곳을 뉴하모니라고 불렀다. 오언의 꿈에 공감한 8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는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 재산을 공유하고 협동적으로 노동하며 충분히 휴식하는 조화로운 마을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하지만 2년도 못되어 공동체는 해체되어 버렸다.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갑론을박만 할 뿐, 실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8백여 명 중 1백여 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공동체는 규모면에서도 주민들이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생산하기에는 너무 작았고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노동력, 조직, 생산 기술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뉴 하모니(New Harmony) 협동마을의 구성도.(사진출처 : 네이버케스트-'경쟁이 아닌 '협동'으로 살 수 없는가?) 

로치데일로 가는 징검다리, 윌리엄 킹과 톰프슨

오언의 꿈은 실패로 끝났지만, 영국 전역에 그의 꿈을 따르는 제자들이 줄을 이었다. 오언의 사상을 선전하는 갖가지 계몽 활동, 그의 생각을 현실에 실현하려는 수많은 조직들, 그의 협동의 사상은 가는 곳마다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오언을 따르던 협동조합의 흐름을 통칭 오언주의 협동조합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협동조합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매주 일정 금액 이상을 출자하고, 더 많은 자금을 축적하기 위해 소매점을 경영하였다. 그리고 점포 경영을 통해 획득된 이윤은 배당하지 않고 공동체 건설 기금으로 축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1830년 무렵 오언주의 협동조합은 영국 전역에 300여개 이를 정도로 확산되어 있었다.


윌리엄 톰프슨은 인간의 노동과 생산물을 가장 현명하게 배분하는 방법으로 협동조합을 꼽았고, 

이는 로치데일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언주의 협동조합운동의 지도자로 윌리엄 톰프슨과 윌리엄 킹, 두 사람을 들 수 있다. 윌리엄 톰프슨은 노동자 계급의 빈곤과 도덕적 타락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인간의 노동과 그 생산물을 가장 현명하고 건전하게 배분할 수 있는 모순 없는 제도로 협동조합 공동체를 꼽았다. 그는 공동체에 필요한 출자금을 기업가나 지도층에 의존하려고 했던 오언과 달리 노동자들 스스로가 마련해야 하며 노동자들 스스로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직접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금이든 운영이든 노동자들의 문제는 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이어져 로치데일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브라이튼의 빈민구제운동을 통해 빈자들의 의사로 이름을 떨쳤던 윌리엄 킹은 잡지 <협동조합인>을 발행하여 노동자들에게 협동조합의 사상을 보급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협동조합의 목적을 1) 빈곤에 대한 조합원 상호 간의 보호, 2) 필요한 생활물자의 더 많은 확보, 3) 공동 자본을 통한 독립의 달성으로 규정하고, 확보된 자본으로 점포, 더 나아가서는 협동조합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했다. 특히 킹은 현금 거래와 양질의 물품 구매 및 공급, 회계 제도의 도입을 통해 점포 성공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공동체의 원대한 꿈도 점포 성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킹의 생각이었는데, 그의 생각은 고스란히 로치데일 조합의 방침으로 이어졌다. 

윌리엄 킹은 잡지 <협동조합인>을 발행해 노동자들에게 
협동조합 사상을 보급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던 오언주의 협동조합들은 1830년 중반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조합이 정치운동에 이용되고 법인격을 갖추지 못하여 각종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였다. 킹의 제안과는 달리 외상 때문에 문을 닫는 조합도 상당수 있었다.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 로치데일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은 1844년 맨체스터의 작은 마을 토드레인에서 문을 연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이었다. 오언의 꿈을 이어받고 윌리암 킹과 톰프슨 사상을 점포 성공의 징검다리로 삼았다. 1주일 2펜스씩 1년 동안 1파운드를 모은 28명 노동자들의 출자로 1주일에 세 차례 밤에만 개장하는 점포를 열었다. 처음에는 밀가루, 버터, 곡물가루, 설탕과 양초 등 다섯 가지 물품을 취급할 정도로 열악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이 초라한 점포가 전 세계 12억 인구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조직의 뿌리가 되리라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리라.


1844년 영국 로치데일에서 문을 연 최초의 소비조합 상점. 현재는 소비조합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출처 : Permanent Culture Now)


로치데일이 성공한 협동조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의 출자 및 운영 참여, 정량 정품의 물품 판매, 외상 배제와 현금 이용, 출자 배당 제한, 남녀평등과 1 1표제, 조합원교육, 정확한 회계 기록과 정보 공개, 이사들의 헌신 등 당시 어떤 사업체보다 더 혁신적인 운영 때문이었다. 이사들은 매주 화요일에 모여 조합의 운영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조합에 필요한 일들을 나눠 맡고 이용이 뜸한 조합원을 방문하여 그 이유를 청취하고 조합 운영에 반영하였다. 또한 한 달에 한번 정기적인 조합원모임을 열어 회계 기록을 공개하는 등 조합 운영 현황을 알리고 필요한 결정을 했다. 


현재 로치데일에 가는 길목에는 협동조합의 발생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출처 : getty images)


다른 무엇보다도 이용고 배당은 조합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이용을 이끌어낼 수 있던 동력이 되었다. 오언주의 협동조합에서는 점포에서 나오는 잉여를 모두 미래에 만들 공동체의 자금으로 축적했는데, 로치데일에서는 3개월에 한번씩 결산을 통해 남는 잉여를 조합원들에게 이용고에 비례하여 배분했던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조합 이용의 실익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확신을 줌으로써 더 적극적인 이용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용고 배당은 로치데일 성공의 가장 중요한 열쇠였다.


역사는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의 수고가 쌓여 한 단계씩 진전된다. 로버트 오언, 킹과 톰프슨의 사상, 협동조합의 실험에 참가했던 가난한 노동자들의 절실한 필요와 열망의 토대 위에 비로소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 로치데일이 등장할 수 있었다.
 
. 윤형근(한살림 성남용인생협 상무이사)

윤형근 : 국내 대표적인 협동조합운동 활동가이자 이론가로 현재 한살림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역사 속 협동조합 선구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한 <협동조합의 오래된 미래, 선구자들>(2013, 그물코)이 있다.


출처: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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