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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사회적경제

[특집1] 본격 수다 한마당 / 우리, 여기 성평등한 마을을 위하여
2018-07-13 조회 513 댓글 0
특집1ㅣ본격 수다 한마당 / 우리, 여기 성평등한 마을을 위하여


우리 사회는 지금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 새롭게 놓여 있다. 남녀간의 권력형, 갑질 성폭력의 문제를 고발한 미투운동을 넘어, 뿌리 깊은 남성지배사회에서 고착화된 젠더(gender)가 가지는 권력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각성을 촉구하며 문화와 제도 등 사회의 전 분야에서 진정한 성평등을 이루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다양한 세대와 연령, 성별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들의 마을은 과연 어떨까? 여성과 아동이 안전한 마을을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지역사회 내 성평등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민감도를 갖고 있을까? 마을공동체의 활동의 다수가 여성인데, 마을공동체의 정책과 비전에서 과연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되고 있을까? 결혼한 남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신화’에 얽매어 마을 안의 비혼자나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온 것은 아닐까? 우리는 마을 안에서 성평등한 공동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논의구조를 과연 만들었을까?
이런 문제의식과 성평등한 마을에 대한 희망을 품고, 여성주의와 젠더감수성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마을 여성들이 모였다. 문혜정 서울시 찾동추진지원단 마을사업지원팀장이 사회를 맡고, 다양한 배경 속에 마을을 살아가는 20대부터 50대까지의 마을활동가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성동마을지원센터 조연희, 중랑마을지원센터 조영주 팀장, 사단법인 동대문다음의 권기정 대표 그리고 관악마을지원센터 여영옥 팀장이 그 주인공들. “이번 한 번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연속 대담과 후속 모임까지 촉구한 이날의 후끈했던 집담회 현장을 소개한다.


페미니스트, 이상한 사람이라고요? 

문혜정: 안녕하세요? 서울시 찾동추진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문혜정입니다. 사실, 나이를 밝힐 필요는 굳이 없지만요. 다양한 연령대별로 마을 안의 성평등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한 번 밝혀 봤습니다(웃음). 각자 돌아가며 소개를 하고 시작할까요?

권기정: 40대 권기정이라고 합니다. 원래 사서로 일했어요. 중랑정보도서관에서 근무했고, 2012년부터 마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사단법인 동대문다움의 대표를 맡으면서 전업활동가로 걸음마를 떼었고요. 저희 사단법인은 젠더 거버넌스 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여성 이사진이 대부분이에요. 현재 동대문구로부터 성평등기금을 받아서 페미니즘 수업과 성평등 마을강사를 육성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쁘나: 중랑마을지원센터에서 활동하는 조영주입니다. ‘사쁘나’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고 계시고요. 89년생으로 이제 딱 서른이 되었습니다.

조연희: 저는 성동마을지원센터에서 일한 지 1년 조금 넘었고요. 20대 후반입니다.

여용옥: 관악마을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고 50대인 여용옥입니다.

 

 
문혜정: 정말 신기하게도 이런 분들을 모셨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분들이 모두 단박에 오케이를 해주셨어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런 느낌이었달까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이나 자신의 활동 안에서 성평등에 대해 말하자는 제안을 듣고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제안을 받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해볼까요?
 
여용옥: 관악구에서 마을 일 한 지는 10년쯤 되었고요. 그 전에는 여성농민단체, 정당에 있었어요. 단체나 정당에 있을 때는 솔직히 여성주의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런데 마을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이 여성이 대부분인데, 내가 내뱉는 위로라는 말이 도리어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어서 고민하던 참이었어요. 젠더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길래 당연히 와야지, 했죠(웃음).

권기정: 저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이렇게 오해를 살지 몰랐어요. 페미니스트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요즘 들어서는 무슨 커밍아웃을 하는 기분이잖아요.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부연설명이 많아지고. 실제로 최근 경험을 통해서 ‘페미니즘과 여성주의에 대해 말하는 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저희 동네에서 페미니즘 수업을 한다고 현수막을 걸었는데, 거기 공개된 담당자의 전화로 혐오문자가 막 오더라고요. 저희 모두 깜짝 놀랐어요. 여기 꼭 참석하고 싶었던 건 페미니스트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오해를 풀고 싶어서예요(웃음).

사쁘나: 저는요, 이 대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 대담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왔어요. 솔직히 왜 이제야 이 의제가 공론장에 나왔을까 싶었고요. 두 시간이라는 정해진 시간 내에 얘길 다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이렇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모로 정리해 왔어요(좌중 박수). 오늘을 씨앗으로 삼아 이런 성평등 공론장이 지역마다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조연희: 제안이 왔을 때 걱정이 먼저 앞섰지만 센터에서도 나가보라고 응원해주셔서 오긴 했는데, 사실 계속 두려운 마음이 있어요. 마을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과연 어디까지 오픈하는 게 좋을지 걱정도 되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집단으로 해보자는 제안이 기쁘기도 했어요.

센 언니 vs 사근사근한 언니? 이분법은 곤란

문혜정: 저 역시 이 자리에 오신 분들과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사실 여기 오신 분들은 마을 안에 왜 페미니즘이 필요하고 작동해야 하는지는 다 이미 알고 계셔서 굳이 거기에 대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과연 여성들이 마을 안에서 안전하게 공론장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인가라는 생각은 들거든요. 마을은 특히 대면적 관계니까요. 또 ‘마을활동가라면 으레 ‘센 언니’라는 캐릭터여야만 하는가’라는 여성의 다양한 롤모델에 대한 고민도 한 번쯤 나눠보고 싶었어요. 마을 안에서 우리의 비빌 언덕이 되어줄 다양한 여성 롤모델에 대한 모색도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요.

여용옥: 일단 센 언니부터 말할 게요(웃음). 제가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할 때만 해도 예비역들이 ‘여자가 감히?’ 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난 ‘왜 안 되지?’ 이해를 못하던 타입이었고. 그러다가 농민단체에 갔는데, 남성도 아니지, 나이도 어리지, 미모가 되나, 학력은 튀지… 내 말이 들리지도 않고 기록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똑 부러지게 크게 말하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마을에 들어왔는데, 너는 왜 그렇게 주도적이냐, 남성적이냐 이런 말을 계속 듣게 됐어요. 나의 말투가 뭐가 문제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위축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만약 남성이 나처럼 말해도 넌 그렇게 말할 거니?”라고 물으니까 말을 못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잖아. 나, 안 고칠래!” 그랬어요. 원래는 나의 장점이었는데, 마을에 오면서 단점으로 느끼던 혼란을 해결하고 나서 너무 편해졌어요. 여성으로서 내 말이 들리게 하는 과정이었고, 생존하면서 생긴 나의 말투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거죠.

 

사쁘나: 지방선거가 끝났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이 40~70대까지 남성밖에 없잖아요. 이게 구의회로 고스란히 넘어와요. 지역 의제를 논의하는 공론장에서 전혀 다양성이 보장될 수 없는 구조죠. 또 여성 관련 의제를 다룬다 해도, 출산을 담보한 정상가족 신화 속의 기혼여성만을 의제로 삼고 있어요. 그 외의 여성들의 삶은 다 사라져버리는 거죠. 여성의 실체는 있지만, 그걸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없는 실정이에요. 공론장도 없고, 그런 분위기도 없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을 때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죠. 그러니 저 역시도 드세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돼요. 연습하고 정제하고 검열하면서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하려고 노력하죠.

권기정: 대학 다닐 때 여성학 수업을 들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82년생 김지영>이 그렇게 반향을 일으킨 것도 그렇고요. 지금은 시월드니 한남충 같은 혐오 표현들로 서로를 상처 입히기 바쁜 거 같아요. 전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페미니스트라고 봐요. 그리고 그들이 생활 속에서 활동하면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혜정: 저 역시도 업무용 웃음이 있고, 사근사근하게 대해야지라는 강박이 있어요. 여성이 마을이나 조직에서 일하는 방식이 센 언니냐, 여성적이고 친절한 언니냐 두 방향밖에 없는 거 같아서 피곤하게 느껴져요. 특히 마을을 보면 여성이 70~80%를 차지하는데도 여성의 노동은 가치가 폄하되잖아요. 여성이 전통적인 돌봄의 영역 외에 다른 걸 주장하는 걸 지역에서 과연 반길까 싶은 거죠.

여용옥: 어제 단체장 회의를 워크숍 방식으로 하면서 몇 분을 초대했어요. 근데 남자분 한 분에게 다들 꼬박꼬박 ‘전(前) 000님’이라고 호칭을 부르는 게 좀 마음에 걸려서 뒤풀이 자리에서 “이제부터 ‘~씨’라고 부르기로 했어요”라고 말하니까 그 양반이 “난 괜찮아. 용옥 씨, 괜찮지?” 그러는 거예요. 그 남자분에겐 호칭을 붙이고 여성인 저에게는 ‘~씨’라고 하는 그런 식인 거예요. 이런 사항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그렇게 하자’고 받아들이긴 하지만, 여성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거죠. 저처럼 매번 문제제기를 하는 역할을 맡다 보면 “또 쟤야”라는 말을 듣게 되고요.

 

권기정: 사단법인 만들 때도 ‘여자들끼리 모여서’ 이런 식의 폄하를 많이 받았어요. 남성들이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라고 받아들이나 봐요. 파이를 나눠 가지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파이를 만들겠다는 건데도 말이에요. 우리가 자리를 만들어서 뒷세대를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씀하셨던 대로 누구나 업무상 쓰는 가면이 있죠. 근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매력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도 무거운 감정노동이잖아요. 사람을 온통 성적 대상으로만 본다는 건 얼마나 그래요.

조연희: 전 제가 친절한 사람인 게 좋고 그게 편해요. 업무를 할 때 만나는 분들에게도 그러한데 그중에 제가 정말 애정하는 어르신이 계세요. 한번은 업무 관련해 용건이 있어서 안내차 전화를 드렸는데 전화 말미에 “젊고 예쁜 연희 샘이 전화해주니까 기분이 좋다”고 그러시는데, 멍해지더라고요. 나는 지금 일하는 중이고 친절하게 내가 좋아하는 어른에게 업무 내용을 전했을 뿐인데 뭐지, 했어요. 물론 칭찬으로 하신 말씀이시겠죠. 그런데 왜 나는 모멸감이 느껴졌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권기정: 미투운동이 권력과 젠더의 문제인데, 그동안 눌려온 현실이 확 터진 거죠. 방금 이런 느낌들 다 겪어봤잖아요.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게 쌓이고 성추행,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현실에서는 입 다물고 있는 거죠.

여용옥: 얼마 전에 민관협력 관련 공개채용이 있었어요. 뽑힌 분이 어떤지 궁금해서 “일 잘해?”라고 물어봤더니 “되게 상냥해.” 그러더라고요. “어린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아줌마더라.”라고 하고. 그래서 제가 “몇 살부터 아줌만데요?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라고 그랬어요. 일 잘하느냐는 질문에 예쁘다, 나이가 많다, 친절하다 이런 부가적 기준이 여성에게만 붙는단 말이죠. 저보고도 그래요. “하는 건 장군인데, 옷은 이렇게 입네?” 웃음소리 크고 말투는 씩씩한데 원피스를 즐겨 입는 게 의외라는 식이죠. 이런 평가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예요.

“네가 예민한 게 아니야”, “그러지 말아요!”라고 말해주는 문화가 필요

문혜정: 여성을 스트레오타입으로 대상화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해요. 또 불편해하는 여성에게 “네가 예민한 게 아니야.”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 계속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고요. 그런데 과연 이런 부분이 마을 안에서 이뤄지고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그런 풍토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은데요.

여용옥: 지역에서 마을독립활동가 준비팀에 제가 늦게 결합했어요. 거기에서 ‘성평등리스트’를 작성하자고 제안했어요. 사실, 기획단계부터 넣었더라면 더 좋겠지만, 이게 있어야 다음에도 이런 과정에 계속 포함될 수 있을 거니까요. 다행히 준비팀 사람들이 성평등교육에 대해 열린 태도여서 잘 받아들여졌죠. 그런데 가끔은 피곤하기도 해요. 왜 혼자 만날 젠더교육 하자, 성평등교육 넣자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가 싶어서요. 늘 혼자 예민한 사람, 시끄러운 사람, 쟤만 피하면 된다는 요주의 인물이 되고 있죠(웃음).



사쁘나: 중랑에서는 서울시 후원으로 여성폭력 예방강화를 목적으로 여성폭력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성/가정폭력 등 젠더 폭력 전반에 대한 사회적 ·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여 예방의식을 확대하고자 ‘여성안심행복마을’ 사업을 3년째 진행하고 있어요. 사업내용은 교육과 캠페인 등으로 이뤄져 있어요. 작년에는 ‘함께 사는 힘을 기르는 마을 강좌’라고 해서 장애인, 성소수자, 미혼모 등 마을구성원에 대한 감수성 및 연대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을 기획해 운영했어요. 또 성 인지적 관점으로 중랑구의 정책이 실행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성 인지 모니터링단’ 활동도 진행되고 있어요. 저는 1년간 이 과정에 참여했는데, 이건 정말 젠더 거버넌스 차원에서 확장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일상에서 제재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매번 참석하는 회의가 있는데 (성인지) 감수성 낮은 이야기를 해요. 용기가 안 나서 ‘누군가 중재를 해주겠지…’라고 기다리면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고요. 그래서 하루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말했어요. “그런 발언은 상처를 주거나 혐오 발언으로 읽힐 수 있다. 구성원을 고려하면서 애기해달라”고요. 그렇게 현장에서 제재를 해야만 되더라고요. 또 회의 끝나고 보면 설거지는 여성들만 해요. 그래서 전 모임 마칠 때 “오늘 마신 컵은 우리가 각자 씻고 가죠?”라고 말해서 실천하게 하고 있어요. 전에 인상적으로 본 게 사이다제작소의 캠페인인데, ‘컵을 씻는 건 여성의 도리입니다’라는 문구에서 여성 위에 X자를 치고 ‘먹은 사람’이라고 써둔 거예요. 이런 캠페인이 일상에서 확산되었으면 좋겠어요.
 
권기정: 지지해주는 사람이 중요해요. “싫어요” “그건 아닌데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 않고 받아들이고 지지해주는 말들이 용기를 주거든요. 이건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그래요. 똑같이 부당한 걸 봤어도 나서고 싶지 않은 경우가 남자들에게도 있거든요. 누군가 용기를 냈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지지해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왕따’가 보편화되기 전에 학교를 다녔는데, 인기 있고 반에서 잘 나가는 애들이 누군가 하나를 찍고 괴롭힐 때, 나머지 친구들이 “그건 좀 심하다”라고 말리면 멈춰져요. 요즘은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게 한 명이 괴롭힘 당하는 걸 제재하는 사람이 없고 보고만 있는 문화, 방관자 문화가 만연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쁘나: 전 현장에서 일하는 건 대부분 여성인데, 왜 정책이나 비전을 수립하는 현장에는 남성만 있는지 늘 이해가 안 갔어요. 청소년 의제에는 청소년이 없고, 마을 정책에는 여성이 없어요. 게다가 모 기관의 만족도 설문조사에 “담당자가 용모단정했습니까?” 이런 조항이 있는 거예요. 글을 써서 항의할까 하다가, 기관과의 관계성도 있어서 참았어요. 서울시가 정한 규칙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더 많은 항의가 있어야 바뀔 것 같아요. 또 회식 자리에서 젊은 여성이라고 하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넘어가고 참으니까 되풀이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있는 자리만이라도 이런 고리를 끊어야겠단 마음이 강해요. 공동체가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면, 내가 여기서 활동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는 참지 않고 이야기하려고 해요.



조연희: 실은, 저는 그러지 못하고 참는 편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아닌 건 아니라고 또박또박 잘 말하는데, 일하는 현장에서는 도리어 그런 얘길 못하겠어요. 얼마 전 성평등한 행동을 촉구하는 ‘우리의 약속’ 워크숍 때도 이게 과연 지켜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편한 언행을 하고도, 잘못된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분들이 많아요. 전형적이죠.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행동을 바꾸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적하는 게 도리어 허무한 거죠. 이런 제 삶과 일에서의 괴리를 느끼던 중에 사쁘나님 말씀을 들으니까 너무 공감이 돼요. 내 안에서 언어화는 이미 되었는데, 그걸 말로 내뱉지 못해서 힘든 적이 있었어요.

여용옥: 성평등 감수성이 떨어지는 건 몇몇 남성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50대인데, 지역에서 리더인 여성 중에는 이른바 ‘바지 입은 여성’, 남성화된 분들이 많거든요. 여성끼리만 일하는 곳인데도 조직문화는 굉장히 위계를 따지고 지시하는 문화, 남성적인 문화가 만연해요. 전 그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생물학적 정체성은 여성이면서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으니까. 남성은 모르면 말해서 고치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남성화된 여성은 그걸 의식조차 못해요. 전 성평등 문화는 조직문화, 지역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을 안에서도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거고, 체크리스트나 우리의 약속 같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걸 끊임없이 돌아보고 점검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 성평등 문화는 조직문화, 지역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문제이고 일상에서 체화되어야 할 문제라는 데 공감하는 참석자들.


성평등문화, 마을에서부터 말해보기

문혜정: 알고 있어도 안 바뀐다는 게 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면 혹시 마을공동체, 여성주의자 연대, 자치구 연대, 이런 식으로 연대체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비빌 언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용옥: 전 여성이라고 그 연대체에 다 들어올까봐 무서워요(웃음). 진보진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자기 인식이 너무 커서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젠더감수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져….

사쁘나: 경계할 지점은 있겠죠. 그래도 연대는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평등 문화가 항상 마을의 주요의제가 되긴 어렵거든요. 지역에서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인권감수성 교육이 없는 곳도 아직 많아요. 자치구에서 내는 소식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데, 전 교열 볼 때 청소년이나 여성을 대상화하는 글이 있으면 일정 부분 편집장의 권한으로 다 고쳤어요. 문장을 바꾸고 문단을 드러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성평등하지 않은) 이 사회 문화에 (대부분이) 영향을 받고 있는 거죠.

권기정: 교육하며 느끼는 게 한 번에 바뀌는 건 없다는 거예요. 대학생 때 페미니즘 수업하던 강사님이 그러셨죠. 평생해도 이 문화가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두고 볼 수 없으니까 1%라도 바꾸고 싶어서 한다고. 2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성평등교육 강사 양성과정이 끝나면, 그분들이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게 될 텐데, 그분들의 재생산 교육에도 투자를 많이 해야겠구나 싶네요.

 


▲일상에서 여성혐오를 제지하고, 또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여용옥: 전 조직이나 그룹에 없으니까 주로 책을 읽으며 공부해요. 근데 혼자 있으면 둔해지고 놓치는 부분이 생겨요. 내가 나도 모르게 감수성 낮은 단어를 썼을 때 지적해주는 그룹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변에다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하자고 꼬드기는데 아무도 안 물어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을활동가들이 너무 바빠요. 시간이 안 되니까.

조연희: 그런 모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는 실무자 세력이 커졌으면 하는 마음을 이 자리를 빌어서 전하고 싶어요. 그렇게 자생적으로 연대하는 그룹이 생겨나면 좋겠어요.

사쁘나: 완전무결한 페미니스트는 없는데 뭐 하나 잘못하면 해명하라고 달려드는 문화도 바꿔나갔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실수하는 인간이고, 늘 완벽한 발언을 할 수도 없잖아요. 저는 종종 공식행사에서 사회를 맡게 되는데, ‘감수성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게 노력하자’고 늘 기도하며 시작해요. “혐오발언은 절대 안 돼”가 아니라 “그래, 이건 잘못했어”라고 성찰하고 사과하고 재연하지 않게 연습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여용옥: 제가 엊그제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네트워크 파티에서 사회를 봤는데, 공연팀 노래를 빗대서 참석자들에게 호응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어느 분에게 부담을 준 거예요. 자리가 파하고 나서 담당자에게 이분이 불편했다고 말씀을 했대요. 그 말을 전해 듣고 그분에게 내 사과를 전하고 싶다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라고 했어요. 그분이 전화를 걸어오셔서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데서 실수할까봐 일부러 말을 했다. 그리고 사과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저도 “이렇게 말하기가 더 쉽지 않은 일인데 전화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고요. 완벽해지자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사과하고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데 대찬성이에요.

젠더감수성 교육, 인권감수성 교육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 일상 속에서 성차별이나 성불평등을 인지하는 젠더감수성,
소수자를 혐오 배제하지 않는 인권감수성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참석자들.


문혜정: 전 젠더감수성은 성차별적 문제만 다루는 게 아니라,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나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준거 틀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마을 안의 청소년, 청년들을 생각해보면 교육이 참 중요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마을에서는 어떻게 이런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까요?

사쁘나: 소식지 만들 때 주요 지면을 청소년, 장애, 여성인권에 할애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대신 티가 너무 나지 않게요(웃음). 또 마이크를 잡는 사람의 남녀 비율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를 볼 때도 발언의 비율도 맞춰보려고 하고요. 이건 개인적 실무자의 실천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거고요. 마을에서 여성주의 확산을 어떻게 하느냐.  답은 존중문화 확산이라고 생각해요. 소통교육, 대화교육, 경청하고 비폭력대화를 하는 통합적 교육이 많이 개설되었으면 좋겠어요.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이 잘 안 오는 게 한계지만요(웃음).

권기정: 교육하며 경계를 무너뜨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각종 단체나 학교, 도서관 이런 단체들이 코워크하는 방식으로 연결되면 좋겠어요. 학교에서도 성교육을 하는데, 요즘 아이들 눈높이에 맞지도 않고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지는 교육들도 많거든요. 또 전 디지털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카톡 보면 폭력적인 문화나 감수성 떨어지는 문화가 너무 많이 보여요. 타인의 사진을 찍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가족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찍어 올려서 조회수를 받으려고 하고 ‘엄마 몰카’, ‘여동생 몰카’ 이런 문화에까지 노출되어 있어요. 욕심을 부리자면 마을, 학교, 단체 여러 군데에서 성평등 교육이 이뤄져서, 위로도 아래로도 그 불씨가 옮겨 붙었으면 해요. 10대가 느끼는, 20대가 느끼는 각각의 페미니즘이 다르다지만 결론은 비슷하거든요. 초등학생조차도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이런 폐해들이 생활 속에서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러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싶고요.

조연희: 성동구는 주민들에게 마을활동의 시작과 등장을 돕는 교육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얼마 전 진행한 기수에서는 한 주차 강의를 ‘마을에서의 젠더감수성’으로 잡았어요. 장이정수 대표님이 강의를 맡아주셨는데 그 강의 때문인지는 몰라도 반응이 좋았어요. 올해 씨앗기 모임 중에는 인문학 공부를 하는 젊은 엄마 모임도 들어왔거든요. <82년생 김지영> 세대들인 그분들이 당사자로서 여성이라는 주체를 스스로 돌아보게 되고, 결혼과 출산, 육아와 나의 관계를 고민하시는 걸 보고 이게 지금 우리 마을에서 기점이 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사쁘나: 이 대담 관련 후속모임이 생긴다면, 성평등 관련 마을 커리큘럼을 모으는 모임을 하고 싶어요.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변이 나오듯이 질문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고민하면서 좋은 커리큘럼을 가진 단체를 공유하고 지역 안에서 좋은 토론 주제를 던질 수 있게 하는 게 여성주의의 확산에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일상의 작은 실천부터 성인지감수성을 반영하는 노력을


▲ 참석자들은 성평등 마을 이슈가 마을공동체에서의 주요 이슈로 다뤄질 수 있도록 
광역에서도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촉구했다.

문혜정: 오신 분들 대화를 보면서, 불을 지르는 화전민 같은 느낌을 받아요(웃음). 당사자이면서 연대를 고민하는 분들이니까. 이 자리를 마련하면서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을 요청 드린 것 같아 걱정도 됐는데,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과 서로 존재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든든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 각자 속한 지역 말고 광역 단위에서 어떤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해볼까요.

여용옥: 이번에 생태학교를 꾸리면서 신청서의 성별란에 남, 여, 기타 항목을 기입했어요. 그랬더니 1명이 새롭고 좋다고 답변이 왔어요. 누군가는 유심히 보고 있었던 거죠. 사업 공고문 한 장, 신청서 한 장에도 성인지감수성을 반영하는 노력을 했으면 해요. 정당 당직자 모집공고에 사진을 없애자고 계속 주장해 관철시켰듯이 그런 노력을 광역에서 보여주면 좋을 거 같아요. 아, 또 하나 구체적으로 제안드릴 사안이 있는데, 마을공동체 부모 커뮤니티 사업 관련해서 심사 운영비 항목에 ‘돌봄교사 비용, 운영비용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를 명시화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비용이 없다고 넣어달라고 해도 잘 안 되는데, 나중엔 정말 이게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사쁘나: 실제로 부모커뮤니티 사업 관련해서 돌봄비용이 안 되서, 심사시간 동안 상근자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이제 여성의 희생과 헌신의 패러다임이 광역 단위에서 다뤄지는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뉴스레터 같은 미디어에서 표현 하나에도 더 많이 고심해주셨으면 하고요. 이제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런 현실적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용옥: 헌신과 희생의 패러다임을 버리자는 말에 대찬성이에요. 마을활동에 대해서는 대부분 ‘너네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봉사해야지’라는 시작이 있잖아요. 녹색어머니회에 대해서 공공이 해야 할 일을 하니까 활동비를 지급하자는 논의를 하듯이 그런 이슈를 광역에서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광역에서 이런 관심사를 묶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사쁘나: 마을에서 여성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서는 안 되잖아요. 이 건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진짜 많지만, 이건 후속대담인 ‘노동’에서 이어졌으면 하는데…. 진짜 후속대담 할 거죠? 저만 강요하는 건가요?(웃음) 마을정책 2기를 보면, 사회적 우정을 강조하시잖아요. 전 그 사회적 우정 안에 여성도 있을까 싶더라고요. 정책 안에 이런 대담자리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문혜정: 말씀을 잘해주셔서, 이 집담 수다가 저에게는 간만에 위로받는 후련한 자리였어요. 이제 시간상, 참여소감을 들으며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조연희: 일하면서 노동의 가치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 저에겐 중요한데, 그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을 만나 기뻤습니다. 저는 마을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자리처럼 다른 마을에 계신 분들을 만날 때 오히려 내가 우리 지역의 마을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제가 비혼 청년이라서 마을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기도 해요. 마을의 가치가 좀 더 많은 세대들에게, 당사자인데도 아직 마을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더 나은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용옥: 대담 초청 이메일에 “사진도 찍으니까 예쁘게 하고 오세요”란 글이 있는데 그걸 보고 너무 좋았어요. 외모 평가가 아니라, 내가 내 자체로 너무 아름다운 자리에 올 수 있게 되었다는 흥분 때문에요. 오늘 얘길 나누며 한방에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지치지 않으면서 가야겠구나 싶네요.

권기정: 사회적 우정 안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는가라는 말, 참 좋네요.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서로를 존중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해요.


▲ “최대한 개시건방진 포즈로 찍어보자”고 결의했지만, 부드러움을 버리지 못한 참석자들. 
이들은 후속 논의를 결의하며 이 대담이 지역에서 성평등 공론장으로 계속 이어지길 기대했다.

대담 정리_정지연(소소북스 편집장) 
사진_신병곤


출처: 서울마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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