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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체인지

지역 ‘일거리’에서 지역 ‘일자리’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019-03-20 조회 851 댓글 0
마을 + 특집ㅣ지역 '일거리'에서 지역 '일자리'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지역 청년 뮤지션과 청년 공간

나는 음악을 하며 살기로 한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이었다. 방과후학교와 개인교습,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활동비를 직접 벌어서 활동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뮤지션 중 한 명이었다.

연습실 비용, 레슨 비용, 장비 관리, 녹음실 비용 등 작품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은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내려면 비싼 녹음실을 빌리고, 비싼 장비, 프로그램들을 사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하고 싶었던 작업들을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청춘행성209’라는 공간이 있었다. 청년들의 아지트, 실험과 담론의 장, 놀러 가면 밥해주는 공간, 나를 돌봐주는 선배가 있는 공간 등 각자가 해석하는 다양한 필요를 가진 지역 청년들이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관계를 기반으로 209공간에 모여서 이것저것 작당모의를 하며 놀았다. 

초반에는 단순히 PC방 가고, 맥주 마시러 가고, 영화 보러 가는 정도로 공간을 사용했다. 공간에 있는 공간지기 선배에게 같이 해달라고 보채면 같이 해줬다. 단순히 공간 시설이 좋았던 것 외에 같이 놀아주는 상대가 있어서 발길이 이어졌다. 209에서는 동네 축제, 행사, 프로젝트 등 동네의 소소한 일거리와 놀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반 백수였던 나에겐 딱 맞는 놀이공간이자 쉼터이자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 내가 하는 활동에 대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위안을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여행으로 음악을’ 프로젝트. 제주도로 버스킹 여행을 떠나 자신의 고민을 노래로 써보는 포르젝트였다.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후반에는 거의 공간에서 살다시피 하게 되었고, 뉴딜일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공간지기도 하고, 뉴딜사업이 끝날 무렵에는 공간 지원 대표제안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청년들이 모였다니 지역에서 열렬한 관심을 받았다. 지역활동가 선생님들의 제안은 우리의 놀이가 되었다. 마을 공동체 라디오 강북FM의 공개방송 음향 렌털과 공연을 하기도 하고, 지역 자활센터 소속 청년들과 함께 음악을 배우고 연습해 제주도로 버스킹 여행을 떠나 자신의 고민들을 노래로 써보는 1년짜리 프로젝트(유튜브에서 “수유리 콜라보 여행으로 음악을”이라고 검색하면 감동적인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도 진행했다. 

지역 인문학 서점이자 술집이자 밴드 클럽인 싸롱드비에서 하는 밴드클럽데이, 품 청소년 문화공동체의 축제 추락에서 축제 메인 테마곡 쓰기(앨범으로도 나왔다. <우리는 지구라는 마을에 산다>와 <얼쑤> 2곡), 추락 참여 부스 CM송 만들어서 축제 라디오 진행하기 등 대충 더듬어도 즐거웠던 활동 기억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활동들을 하며 용돈을 만들며 놀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 학원에서 강사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돈 없이 음악으로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을 어느 정도 포기한 채 니트(NIT)로 접어들고 있던 내가 몰입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특별한 기점으로 마을활동을 하겠다는 선언은 없었지만, 이때 받은 돌봄의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지금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한 것 같다. 내가 활동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마을, 선배의 돌봄이었다.




#지역에서 우리의 일자리 만들기

공간에 있던 청년들 모임 중 한 곳에서 조금 큰 단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레이블 사업이었고 공간 구성원들이 기획자, 영상제작자, 사진작가, 뮤지션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나온 제안이었다. 각종 콘텐츠 제작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었으니 어느 정도의 성과를 장담해도 되겠다 싶었다. 음악 유통의 혁신을 이야기하며 처음으로 했던 일은 ‘강북음악크루’라는 강북구 뮤지션 네트워크에 속한 공연팀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 개최였다.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약 15명 정도 되던 인원 중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우리가 경험한 레이블 사업은 도저히 인건비를 만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그렇게 점점 에너지가 흩어져 가던 중 마을기업이라는 지원사업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 살고 있던 동네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모델이란 우리에게 너무 막막하기만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도로 포장이 울퉁불퉁한 거? 

하천에 쓰레기 많은 거? 별의별 이야기들을 해봤지만 별로 흥미 있는 주제들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필요한 것과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매치하기로 했다. 그런 시각으로 동네를 봤더니 연습하러, 공연하러, 녹음하러 홍대까지 매번 왔다갔다하기에는 너무 멀고, 안정적인 일거리가 없어 계획된 지출도 할 수 없고, 동네에서는 술, PC방, 카페 말고는 딱히 놀거리도 없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마을의 필요로 볼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갖고서 마을기업 공모사업 하나를 반 년간 준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업 선정이 불확실한 상황에 자부담금 1,000만원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1,000만원이 있어야 신청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이렇게 고민되던 부분은 지역 선배들의 응원과 조언들을 믿고 악기 팔고 집 빼고 작업실 빼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다 같이 사업에 필요한 초기 자부담금을 마련하는 걸로 해결했다. 강북 청년 자립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지역의 시니어 단체에서 공간의 보증금을 이자 없이 빌려주었다. 다사다난했지만 다행히 마을기업에 선정되어서 수유리콜라보를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



 

▲다사다난한 과정 끝에 오픈한 우리의 공간 ‘수유리 콜라보’. 위는 녹음실이고 아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마을에서 발굴된 청년인 우리가 만났던 청년들

우리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취미에 특화된 음악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악기를 배우는 동시에 밴드를 결성해 자연스러운 커뮤니티를 만들어내고, 연습한 곡을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로 남기고 앨범을 만들어 파티들을 진행하면 만족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업 하나면 우리는 충분히 즐겁게 생계도 유지하고 활동도 지속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청년들의 시간은 금이었다. 눈은 높고, 커뮤니티는 부담스러워하고, 우리가 경험해 왔던 청년커뮤니티들과는 너무 결이 달랐다. 시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철저히 소비자들이었다. 우리는 넷플릭스, 술집, PC게임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노는 것보다 이 활동이 더 재미있어 보여야 하고,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한 부류의 청년들은 돈이 크게 아쉽지 않지만 누군가 만나는 것에 지쳤고, 당장 자신의 생존을 해결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루 종일 시달리고 돌아와서 쉴 수 있는 금 같은 시간을 쉬는 것을 포기하고 참여할 만큼의 활동이라면 눈이 엄청 높아질 수밖에 없는 그런 세대의 청년들이었다. 또 다른 청년들, 이전의 나처럼 ‘쌩청년’이라 호명되는 청년들은 지금도 수유역 번화가에 나와 술집에 가고, 클럽을 찾고, PC방에서 논다. 그런 청년들이 하루 400명은 수유리콜라보 문 앞을 오가며 지나간다.



 

▲ (위) 수유리 콜라보에서 진행한 기타 레슨. (아래) 합주 연습 모습. 



청년들은 TMI(Too much Information)나 TMT(Too Much Talker), 인싸(인싸이더), 아싸(아웃싸이더) 같은 신조어들이 나올 정도로 세련되어 보이지 못하는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 매우 예민한 세대들이다. 그 예민함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의 긴장감과 피로, 부담이 가중되게 만들고,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이야기를 섞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그래서 그냥 사람 많은 곳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부담스러워 하고, 혹시라도 헛소리하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워져서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이런 청년들의 패턴과 기조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의 콘텐츠를 구매하게 만들어야 할 청년들을 해석하니 청년들의 이러한 특성,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청년들과 긴 호흡을 만들어가려면?

자신의 활동과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는 전자의 청년들을 마을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좋은 콘텐츠들이 지역에 들어올 수는 있겠지만, 이후 활동가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후자인 쌩청년들, 그들의 욕구와 필요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놀이들로 시작하여 자신의 고민들을 지역에서 풀어내는 흐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경험했던 사례가 그뿐이라 편협한 글이 될지 모르겠으나, 지역 토박이로 함께 자랐던 10대 시절 친구들 모두 자신의 일이 생기고 난 후에는 자신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생겨서 함께 하자고 직접 제안을 해도 참여할 여력이 없다는 반응을 받게 된다. 20대 초반의 쌩청년이었던 나에게 마을이 내 활동의 기반과 뒷배가 되어 주었듯이, 자원이든 자극이든 무언가 결핍되어 방황하고 있는 청년들의 뒷배가 되어준다면 엄청난 에너지로 보답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청년에게 필요한 마을은 그런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글과 사진_김은수(강북청년자립협동조합 이사장)



 


출처: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웹진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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